영화

더 기프트 (The Gift, 2015) 리뷰

펄수성 2021. 5. 27. 02:50

이 포스트는 스포일러로 가득합니다.

 

고든이 빅엿을 선사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볼 만한 스릴러 영화를 찾다가 러닝타임도 적절하고 (1시간 48분) 플롯도 적당히 흥미로워 보이길래 언니와 함께 자리잡아서 봤다.

 

그리고 한 줄 소감: 학교 폭력, 멈춰! 권선징악을 위한, 권선징악에 의한, 그리고 권선징악을 말하는 영화.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적당히 쫄리고, 뭐 그렇긴 하지만. 스릴러적인 요소도 조금 부족하고, 사이먼이 더럽게 말을 안듣기 때문에 열받는 장면이 좀 많다. 그리고 결말도 살짝 좀.... 시나리오를 쓰다 만 느낌이다.

 

영화 보는 내내 언니랑 계속 한 말: 제발 창문에 커튼을 좀 달아! 제발! 그리고 로빈은 무슨 죄냐고!

 

묘하게 김종국 씨를 닮은 배우 조엘 에저튼이 이 영화의 시발점이 되는 인물, 고든을 연기하는데, 영화 내내 고든이 socially awkward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나도 대리수치로 미쳐버리는 줄ㅋㅋㅋ 고든이 입을 열 때마다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 찬물을 끼얹은 듯한 분위기 때문에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굳이 처음에 고든이 사이먼을 알아본 후 디너에 초대를 하거나 선물을 보내는 등 잘해준 이유를 모르겠다. 사이먼에게 사과를 듣고 싶었으면 로빈만 집에 있을 때 찾아올 이유가 없지 않나? 그리고 선물 공세를 하기 이전, 셋이서 식사를 할 때 과거얘기를 슬쩍 꺼내며,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너 때문에 내가 많이 힘들었고 사실 요즘도 그렇다, 라고 얘기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굳이! I'm happy for you, 라고 거짓말을 할 이유는 뭐지? 고든이 원했던 게 사이먼이 본인을 괴롭혔던 것처럼, 서서히 사이먼의 명예나 사회적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죽이는 일이었다면 설명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로빈이 너무 불쌍하다ㅠㅠ..... 로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든에게 nice하려고 노력했는데. 혼자 집에 있으면서 고든 때문에 떨던 것도 로빈,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 아이 아빠를 모르는 것도 로빈...

 

솔직히 고든이 실제로 로빈을 어떻게 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냥 고든 본인이 받았던 것을 그대로 되돌려 주기 위해, 의심할 만한 정황과 거짓말로 그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You're done with the past, the past is not done with you."

 

영화의 중후반부부터, 사이먼의 잘못으로 점철된 과거 속에서 대표적인 두 업보(고든과 대니 맥도널드)가 현실의 사이먼의 인생을 조지기 시작한다. 만약 사이먼이 실제로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면 이 정도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정도의 업보가. 그리고 사이먼에게 가장 소중한 인물인 로빈도 서서히 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나 당신을 제대로 잘 몰랐던 것 같아, 라며. 내 사람에게만 잘하면 뭣하나? 인생에서 적을 만들고 사는 사람은 언제 등 뒤에서 칼이 찔려도 이상하지 않은 걸. 그리고 거품처럼 실체 없이 쌓인 신뢰는 단 하나의 들통난 거짓말 하나로도 한번에 씻겨내려갈 수 있다.

 

ㅈ도 아닌 자존심만 높고 잘못을 반성할 뇌는 없는 사이먼이 사과 아닌 사과를 위해 고든에게 찾아가는 장면은 코미디 그 자체다. "So do you accept my apology?" 라니ㅋㅋㅋㅋ accept 하겠냐고 사람 두드려패면서ㅋㅋㅋ

영화에서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이런 점이었다. 사이먼이 너무 flat한 인물이라는 점.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또한 현실적인 인물이겠지. 세상엔 절대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

 

쳐맞은 고든의 얼굴을 본 로빈은 더 확신이 생기겠지. 내 남편 사이먼은 괴물이다.

그런 얼굴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찾아왔어요... 출산을 축하합니다." 라며 건네주는 꽃을 받은 로빈에게 남은 감정은 사이먼에 대한 경멸 뿐일 것이다.

 

결국엔 스스로의 업보, 스스로의 거짓말로 주변 사람들, 그의 아들까지도, 다 잃은 사이먼의 이야기었다.

영화가 전달하고 있는 메세지는 뚜렷하다. 시간이 지나도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피해자가, 시간이 지났다는 핑계로 모든 걸 다 잊은 가해자에게 하는 복수극. 그리고 뉘우칠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어리석음의 말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 경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때는 이미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