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비정전 (Days of Being Wild, 1990) 짤막한 감상평

펄수성 2021. 6. 5. 02:27

이 포스트에는 스포일러가 마구잡이로 나옵니다.

 

 

정전: 한 인물의 일대기.

그래서 영화 제목의 뜻은 '아비'라는 인물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아비정전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장면. 맘보를 추는 장국영.

흰 나시와 흰 트렁크를 입은 주인공의 컷씬은 어째 왕가위 영화마다 꼭 한 번씩은 나오는 듯.

 

영화 내 짤막하게 나오는 장국영의 미소 짓는 장면. 하지만 이런 짧은 찰나조차 완전하게 행복하지 않은, 무엇을 생각하는 지 알 수 없는 눈을 하고 있다.

장만옥은 그 옆에 있으면서도 항상 외로웠을 것이다.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은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고, 잡힐 듯 하다가도 결코 잡히지 않을 것 같아서.

장만옥을 아주 좋아하지만, 이 영화에서 어쩐지 장국영와 장만옥은 어울리지 않았다.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와의 케미가 머릿속에 박혀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정부는 어머니가 집에 없다고 했지만 내가 집을 나설 무렵, 뒤에서 누군가 날 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다시 돌아오진 않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싫으시다면.

나도 내 얼굴 보여주지 않는다."

두 주먹을 꽉 쥐고 뒤돌아서 가는 그의 모습이 마치 투정부리는 아이같다.

사랑을 고파하고 따뜻하게 기댈 사람의 품을 그리지만, 아무에게도 곁을 주지 않기에 주변 사람이 떠나가는 건 당연한 결과인데도. 스스로 상처를 만들면서도 상처받지 않았다는 듯 강한 척 하는 아이같다.

 

 

우선 내가 지금까지 봤던 왕가위 영화 중에서는 가장 친절하지 못한 영화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장국영을 죽인 인물이 누군지 끝까지 몰랐다가 나중에 영화 정보를 더 찾아보다가 알게 되었다.

양조위가 어쩐지 조연으로 올라와 있는데 영화 내내 나오지를 않아서 뭔가했었다.

 

사실 그다지 감명깊지는 않은 영화였지만, 왕가위 감독 영화가 항상 다 그렇듯.

아픔이 있을 때 문득 다시 그 영화가 보고 싶어질 때 다시 본다면 전혀 다른 감상을 할 수도 있겠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왕가위 감독이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 라는 대사가 쓰고 싶어서 만든 영화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