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 (Being John Malkovich, 1999) 리뷰

펄수성 2021. 6. 14. 08:41

이 포스트에는 스포일러가 마구잡이로 나옵니다.

한 줄 요약: 어떠한 예측도 통하지 않는 말코비치 판타지! 코미디를 가장한 비극적 철학영화.

 

이 포스터가 은유적인 의미로만 만들어진 줄 알았더니만. 실제로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었다니.

 

주인공인 슈와츠가 꼭두각시 인형극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찾아간 레스터 회사. 7.5층이라는 어이 없는 층수 탓에 그 층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등골을 부수면서 복도를 지나다닌다. 영화 초반에는 무슨 부조리극을 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7.5층의 비하인드를 짧은 비디오로 보여주는데, 마치 세상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게" 디자인이 된 것 같다며 불평하는 여자가 나온다. 그녀의 불만을 들어주기 위해 이렇게 설계되었다는데, 우리 모두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세상과 무언가 거리감을 느끼고, 내가 이 사회에는 맞지 않는 퍼즐 조각 같다는 감정.)

일반적인 상식은 이 영화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 코미디, 그리고 '말코비치'이기 때문이다.

 

 

너무 매력적인 맥신. 두 남녀가 인생을 걸면서까지 매달리는 마성의 매력의 소유자다.

 

슈와츠는 우연히 유명 영화배우인 존 말코비치 (하지만 아무도 이 남자가 어떤 영화에 나왔는지 모른다) 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하게 되고, 맥신의 호감을 사기 위해 안달이 나 있던 슈와츠는 그녀에게 이 정보를 공유하여, 둘은 말코비치의 뇌 속을 15분 동안 점유할 수 있는 JM Inc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 성공한 다른 이가 되고 싶던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15분 동안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을 구경하고 그들의 사업은 번창한다. 하지만 슈와츠의 아내, 로티가 이 체험을 하고 난 후 새로운 자아를 깨닫게 되면서, 영화의 내용이 (더더욱) 뒤틀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로티가 장난하는 줄 알았다. 로티가 맥신에게 사랑을 갈구할 때도 그냥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진지하게 존 말코비치의 몸 속에서라도 맥신과 연결되고 싶어했다니. 이 영화는 앞 내용을 예측하는 게 완전히 불가능하다.

 

이 영화의 장면적 하이라이트는 말코비치가 말코비치 통로로 들어간 후 보이는 세계인데, 말 그대로의 말코비치 월드를 볼 수 있다. "말코비치? 말코비치!" "말코비치!" 어떻게 배우 성조차 찰떡같은 말코비치인지.

 

이 말코비치가 말코비치의 자의식 창구로 들어간 장면은 정말 에픽하다. 말코비치가 이 포탈로 들어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궁금해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당연하지 않은가. 그 스스로의 자의식 속에 들어간다면, 아마 수없이 많은 '나'로 이루어진, 완전하고 불완전한 모든 '나'의 연속이 펼쳐질 것이 당연했다! 인간은, 마치 우리의 신체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듯이, 내면에 수없이 많은 생각과 나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품고 있기 때문에 내 내면 세계는 마치 마주보는 거울로 끝없는 나의 형상을 비추듯 모든 '나의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었다. 그래서, 만약 말코비치가 본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간다면? 무한대의 말코비치를 볼 수 있게 된다. "말코비치!" 말코비치!"

 

그렇게 말코비치탈트 붕괴현상을 겪고 나온 말코비치는 끔찍한 광경을 봤다며 경악, 슈와츠에게 더 이상 내 머릿속으로 들어갔다간 고소할 거라고 경고한다. "I have been to the dark side and back! I have seen a world that no man should see!" (이 광경을 같이 본 관객들은 빵 터지는게 아이러니)

이에 대한 슈와츠의 대답이 걸작이다. "하지만 말코비치씨, 무례한 건 알지만 그 통로는 제가 발견했어요. 나의 밥줄이라고요!" 남의 머리통 불법 점거를 밥줄이라고 일컫는 슈와츠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찌질하다.

말코비치: That portal is mine, and it must be sealed forever for the love of God!
슈와츠: With all respect, sir, I discovered that portal. It's my livelihood.

말코비치: It's my head, Schwartz, and I will see you in court!

슈와츠: And who's to say I won't be seeing what you're seeing... in court? 

 

이 영화가 형이상학적 질문을 담고 있는가? 그건 잘 모르겠다. 딱히 이 영화가 자아의 본질이나 자의식, 뭐 이런 것들에 대한 메세지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처음 포탈을 타고 나온 슈와츠가 이 이슈에 대해서 짧게 얘기하는 장면은 있긴 하다. 

"The point is that this is a very odd thing, supernatural, for lack of a better word. It raises all sorts of philosophical questions about the nature of self, about the existence of the soul."

"Am I me? Is Malkovich Malkovich? Was the Buddha right, is duality an illusion? Do you realize what a metaphysical can of worms this portal is?"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나의 생각은, 나는 인간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아란 건 어차피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의식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에. 몸 따로 영혼 따로, 그래서 영혼이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갈 수 있다거나, 이런 건 잘 모르겠다. 자아의 본질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내 기준에서 자아는 평생 바뀌고 형성되어 가는 유연한 무언가이기 때문에). 하지만 확실한 건 자의식의 형성에 그에 belong한 신체가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슈와츠가 말코비치의 머릿속을 끝까지 점령하지 못했듯이, 결국 슈와츠란 인간은 슈와츠일 뿐이다. 열등감에 쩔어있는 비겁한 인간 슈와츠는 말코비치의 뇌 속에 숨어서 말코비치 행세를 하더라도 그의 찌질한 본색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슈와츠가 닥터 레스터에 의해 말코비치의 신체에게서 쫓겨난 이후 맥신과 로티의 딸 에밀리의 무의식으로 또 옮겨가 살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Look away..."

처음에는 이 대사를 이해 못했는데, 한글 번역이 "딴 델 보자..." 이더라고. 세상에...

처음엔 맥신에게 하는 혼잣말인 줄 알았는데 (로티를 보지 말고 자신을 봐달라는) 무의식이 되어버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니. 체념과 외로움으로 범벅진 그 한 마디가 마음에 박히더라....

 

이 대사 때문에, 나는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잊을 수가 없다. 슈와츠가 말했었지. "의식이란 건 끔찍한 저주니까, 난 생각하고 느끼고 고통 받거든." 우리는 자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 보고 부러워도 하고 더 나아가 그가 되고싶어 하기도 한다.

"왜 인형극을 좋아해요?"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잠시 동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가 봐요.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움직이고, 다르게 느끼는 거요."

열등감은 나라는 존재와의 거리감을 증폭시킨다. 나에게서 멀어지고 싶어할수록, 더더욱 나에게 구속되어 있다는 괴로움만 커질 뿐이다. 인형사이던 슈와츠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현실에 안착할 수 없는 부적응자였다. 말코비치의 육체로 영화 처음 시퀀스에 나오는 인형극을 따라하는 것은 수미상관 구조도 멋졌지만 그 뛰어난 연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만큼 슈와츠가 인형극에 재능이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가 그토록 그의 자아가 불만족스럽고 누군가에게로 탈출하고 싶다는 욕구와 집착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자를 그녀의 아이의 눈으로밖에 바라볼 수 없는 엔딩의 슈와츠. "Look away..." 라고 읊조리는 슈와츠의 슬픈 목소리는 영화 내내 그에게 느꼈던 모든 경멸감을 다 잊고 내가 그의 감정에 공감하게 만들 정도로 슬프게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의 수영장면. 왜 하필이면 수영일까. 마치 슬픔과 고독에 잠겨버리는 걸 은유하듯이. 그리고 슈와츠의 의식이 정말 에밀리의 잠재의식으로 잠겨버리는 걸 나타내듯이....

 

자의식을 영영 잃어버린 말코비치와 다른 이의 무의식에 묻혀버린 슈와츠.

두 인물의 비극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따봉 드립니다.